내 인생에서 기타와 악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나는 음악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이름난 기타리스트가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기타와 악기는 늘 내 삶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좋을 때는 꿈이었고, 일이었고, 사업이었다.
힘들 때는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피난처였고, 때로는 가족의 생활비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50대가 넘어 미국에 온 지금도 나는 여전히 기타를 치고 있다.
고등학생이 낙원상가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시절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에서 기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새로운 기타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어떤 앰프가 좋은지, 이펙터 하나를 바꾸면 소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고 싶으면 직접 악기점을 찾아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낙원상가를 드나들었다.
당시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낙원상가는 특별한 곳이었다.
수많은 악기점이 한 건물 안에 모여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 진열된 기타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학생 신분이라 마음에 드는 기타를 마음대로 살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다.
악기점에 들어가 기타를 구경하고, 사장님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운이 좋으면 직접 만져보기도 했다.
비싼 외제 기타 한 대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지만, 직접 사지 못해도 보는 것만으로 좋았다.
기타의 모양과 색상, 픽업의 조합, 넥의 느낌, 앰프에서 나오는 소리를 하나씩 눈과 귀에 담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악기를 보는 눈을 익히기 시작한 곳이 바로 낙원상가였다.
군대를 제대한 뒤, 결국 낙원상가에서 일하게 됐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나는 낙원상가에 있는 악기점에 취업했다.
고등학생 때 손님으로 드나들던 곳에서 이제는 직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좋아하던 악기를 매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신이 났다. 하지만 악기점에서 일하는 것은 밖에서 구경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손님이 원하는 악기를 찾아줘야 했고, 기타의 상태를 살펴야 했으며,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설명하고 해결해야 했다.
기타 줄을 교체하고, 넥과 프렛 상태를 확인하고, 앰프와 이펙터를 연결하며 하루를 보냈다.
손님들의 취향도 모두 달랐다.
무조건 유명 브랜드를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름보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기타를 찾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기타를 시작하는 학생도 있었고, 장비에 관해서는 직원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연주자도 있었다.
그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나는 기타를 좋아하는 것과 기타를 판매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비싼 기타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브랜드는 화려하지만 마감이 아쉬운 악기도 있었고, 이름은 덜 알려졌지만 직접 연주해보면 놀랄 만큼 좋은 기타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헤드에 붙은 로고보다 실제 상태와 완성도를 먼저 보게 됐다.
뮬이 생기던 시절, 인터넷으로 악기를 팔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터넷 시대가 시작됐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기타 리뷰를 보고, 가격을 비교하고, 중고 장비를 사고파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하지만 당시에는 인터넷을 이용해 악기를 홍보하고 판매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일이었다.
기타와 악기를 좋아하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뮬’이라는 사이트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뮬은 단순한 중고 거래 사이트가 아니었다.
기타, 앰프, 이펙터, 연주와 음악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나는 뮬의 거의 초창기부터 활동했다.
악기점에서 일하면서 뮬 대표에게 직접 광고를 의뢰해 악기점 광고를 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인터넷 광고가 지금처럼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 오프라인 낙원상가에서만 영업하던 악기점이 인터넷을 통해 전국의 연주자들에게 알려진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시도였다.
나는 낙원상가의 오프라인 악기 판매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했다.
직접 악기점을 운영하다
악기점 직원으로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나중에는 친구와 함께 직접 악기점을 운영했다.
좋아하는 일을 내 사업으로 만들고 싶었다.
직접 악기를 고르고, 손님에게 소개하고, 판매하는 일을 내 책임 아래 해보고 싶었다.
매장을 운영하면서 악기를 보는 시각도 더 넓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악기를 가져다 놓는 것과 실제로 손님들이 원하는 상품을 준비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매입가격과 판매가격을 계산해야 했고, 재고를 관리해야 했으며, 손님들의 불만과 제품의 문제도 직접 해결해야 했다.
악기점은 단순히 기타를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도 악기와 함께 일한다는 사실은 좋았다.
고등학생 때 낙원상가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기만 했던 기타들을 이제는 내가 직접 매입하고 판매하고 있었다.
악기점을 친구에게 양도하고 인터넷 사업으로 방향을 바꾸다
그러나 시대는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이 급속도로 확산됐고, 나는 앞으로 오프라인 매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나에게는 악기 경력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컴퓨터와 웹디자인을 전공했고, 인터넷 사이트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에도 관심과 경험이 있었다.
결국 함께 악기점을 운영하던 친구에게 매장을 모두 양도했다.
악기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악기를 직접 파는 일에서, 악기점들이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팔 수 있도록 돕는 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나는 컴퓨터와 웹디자인 전공을 살려 인터넷 사이트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이야 홈페이지나 쇼핑몰을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지만, 당시에는 상황이 달랐다.
메뉴와 화면을 직접 구성하고, 제품을 등록할 수 있는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사진을 올리고, 게시판과 회원 기능을 만들고, 주문과 문의가 가능하도록 사이트 전체를 설계해야 했다.
악기점 사장님들 중에는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많았다.
왜 홈페이지가 필요한지, 인터넷으로 악기를 어떻게 홍보하고 판매할 수 있는지부터 설명해야 했다.
나는 낙원상가에서 일하고 직접 악기점까지 운영했기 때문에 악기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었다.
기타와 앰프, 이펙터의 정보를 사이트에서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소비자들이 어떤 내용을 궁금해하는지도 이해하고 있었다.
악기와 컴퓨터, 두 분야에서 쌓은 경험이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여러 악기점의 사이트를 만들다
사업을 시작한 뒤 많은 악기점의 인터넷 사이트를 제작했다.
단순한 회사 소개 홈페이지뿐 아니라 제품을 보여주고 판매할 수 있는 쇼핑몰 형태의 사이트도 만들었다.
당시 오프라인 매장에만 의존하던 악기점들이 인터넷을 통해 전국의 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왔다.
악기점에서 제품 사진과 정보를 받아 사이트에 등록하고, 필요하면 직접 사진과 설명을 정리하기도 했다.
악기를 전혀 모르는 웹디자이너라면 제품 이름과 종류를 구분하는 것부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악기점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직접 매장을 운영했던 경험이 있었다.
기타와 베이스, 앰프와 이펙터, 드럼과 건반의 차이를 알고 있었고, 연주자들이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 경험 덕분에 일반적인 홈페이지 제작업체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악기점 사이트를 만들 수 있었다.
단순히 보기 좋은 사이트가 아니라 실제 악기 판매에 도움이 되는 사이트를 만들려고 했다.
법인을 설립하고 낙원상가 대표 사이트를 제작하다
여러 악기점의 사이트를 제작하면서 사업의 규모도 조금씩 커졌다.
이후에는 법인까지 설립했다.
개별 악기점의 사이트를 만드는 것을 넘어, 낙원상가 전체를 인터넷과 연결하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낙원상가에는 수많은 악기점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각 매장이 따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이 낙원상가의 악기점과 제품을 한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 사이트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법인을 설립한 뒤 낙원상가를 대표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제작했다.
악기점들을 하나의 온라인 공간에 모으고, 소비자들이 매장과 제품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였다.
지금 돌아보면 시대를 조금 앞서간 생각이었다.
나는 뮬과 같은 악기 커뮤니티 사이트를 직접 만들어보려고 여러 번 시도하기도 했다.
악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보를 나누고, 연주 이야기를 하고, 장비를 사고팔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다만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모든 일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았다.
자금도 필요했고, 여러 악기점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했으며,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도 필요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많았고, 여러 시도 중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일도 있었다.
그래도 그 시절 나는 음악과 악기, 컴퓨터와 인터넷을 연결하는 일을 했다.
내가 좋아했던 악기와 내가 전공했던 기술이 하나의 사업 안에서 만났던 시간이었다.
음악과 사업, 그리고 계속되는 실패
오랜 시간 여러 일을 했다.
낙원상가 악기점에서 일했고, 직접 악기점을 운영했고, 악기점을 친구에게 양도한 뒤 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많은 악기점의 사이트를 제작했고, 법인을 설립해 낙원상가 대표 사이트도 만들었다.
악기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사업에도 도전했다.
어떤 일은 잘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무너졌고, 어떤 일은 시작부터 생각만큼 풀리지 않았다.
사업은 열심히 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 문제도 있었고, 자금 문제도 있었으며, 빠르게 변하는 시장을 따라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한 번의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
여러 번 다시 시작했고, 그만큼 여러 번 힘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이도 들어갔다.
어느새 나는 50대가 되어 있었다.
아이의 교육 문제도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한국에서 진행했던 여러 사업이 어려워지고, 가족의 미래까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결국 미국 이민을 결정했다.
미국으로 떠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미 꼬여버린 일들을 정리하고, 낯선 곳에서라도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50대에 시작한 미국 생활
50대가 넘어 시작한 미국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젊을 때의 이민과는 달랐다.
영어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한국에서 해왔던 경력은 미국에서 그대로 인정받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왔지만, 미국에서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생활비는 계속 필요했고, 아이의 교육과 가족의 미래도 책임져야 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그래도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악기를 알고, 판매를 알고, 인터넷 사이트도 만들 줄 알았으며, 여러 사업을 해본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미국에 오니 그 경험을 바로 돈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 생활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해야 했고, 익숙하지 않은 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힘겹게 지내던 중 나는 리버브를 알게 됐다.
미국에서 만난 악기 전문 거래 사이트, 리버브
리버브는 기타와 앰프, 이펙터, 드럼, 키보드 등 악기를 전문적으로 사고파는 온라인 거래 사이트였다.
처음 사이트를 보았을 때 한국의 뮬이 떠올랐다.
하지만 거래 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한국에서 뮬을 이용할 때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약속 장소에서 기타나 페달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소리를 들어보고, 때로는 가격을 두고 서로 협상하거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직접 만나기 때문에 물건 상태를 확인하기는 쉬웠지만, 가격을 깎고 올리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신경전이 벌어질 때도 있었다.
반면 미국은 땅이 너무 넓었다.
웬만해서는 구매자와 직접 만날 수 없었고, 대부분의 거래를 배송으로 처리해야 했다.
기타나 드럼처럼 크고 무거운 장비는 배송비도 만만치 않았고, 리버브의 판매 수수료 역시 적지 않았다.
물건이 팔렸다고 해서 판매가격이 그대로 내 손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판매 수수료와 결제 관련 비용이 빠지고, 포장비와 배송비까지 계산하면 생각보다 남는 돈이 많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내게는 한 가지 장점이 있었다.
오랫동안 악기와 장비를 다뤄왔기 때문에 어떤 기타와 페달이 가치가 있는지 알고 있었고, 가지고 있던 장비들의 관리 상태도 상당히 좋았다.
한국에서 모은 미국 장비를 미국에서 다시 팔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한국에서 모아 사용하던 기타와 페달 대부분은 미국 브랜드 제품이었다.
한국에서 어렵게 구입했던 미국산 기타와 페달을 미국으로 가져와, 다시 미국의 리버브를 통해 미국 사람들에게 판매하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조금 묘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미국 장비를 구하기 위해 가격을 비교하고, 중고 매물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때로는 어렵게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렇게 모았던 장비를 이제는 미국에서 다시 미국 사람들에게 내놓고 있었다.
미국으로 이민하면서 모든 장비의 원래 박스를 가져올 수는 없었다.
기타와 페달, 드럼 장비를 두세 달에 걸쳐 조금씩 미국으로 가져왔지만, 부피가 큰 박스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버리고 장비 본체만 챙겨왔다.
원래 박스가 없으면 중고 판매가격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장비 상태가 좋았고, 사용하면서 꾸준히 관리해왔기 때문에 아주 헐값에 넘기지는 않았다.
사진을 자세히 찍고, 작은 흠집까지 솔직하게 설명하고, 작동 상태를 정확히 적어 올렸다.
오랫동안 악기점에서 일하고 장비를 거래했던 경험이 여기서 도움이 됐다.
어떤 부분을 사진으로 보여줘야 하는지, 구매자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제품 설명을 어떻게 작성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올리는 장비마다 생각보다 쉽게 팔렸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장비들은 대부분 좋은 제품이었다.
오랫동안 직접 골라 구입한 기타와 페달이었고, 사용 후에도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그래서 리버브에 올리면 생각보다 판매가 수월했다.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잡지만 않으면 물건을 올린 뒤 비교적 빨리 구매자가 나타났다.
페달만 해도 스무 개가 넘었던 것 같다.
그 많은 페달이 하나씩 팔려나갔다.
기타도 팔았고, 드럼 장비도 팔았다.
어떤 물건은 판매 글을 올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팔렸고, 어떤 물건은 여러 문의를 받은 뒤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잘 팔린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당장 생활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건이 팔렸다는 알림이 올 때마다 마음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는 구하지 못할 것 같은 장비들
그중에는 오랫동안 함께한 기타도 있었다.
특별한 시기에 구입했던 페달도 있었고, 다시 구입하려고 해도 쉽게 구하기 어려울 것 같은 장비도 있었다.
어떤 기타는 손에 익어 있었고, 어떤 페달은 내가 좋아하던 소리를 만들어주던 장비였다.
드럼 장비에도 나름의 추억이 있었다.
그런 물건들을 하나씩 판매했다.
사진을 찍고, 설명을 쓰고, 가격을 정하고, 구매자가 나타나면 포장했다.
박스 안에 장비를 넣고 테이프를 붙이는 순간에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내 곁에 있던 장비가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미련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생활비가 필요했고, 가족을 책임져야 했다.
다시는 못 살 것 같은 페달도 팔았고, 기타도 팔았고, 드럼 장비도 팔았다.
가슴은 아팠지만 그 돈은 미국 생활을 버티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됐다.
기타 한 대를 팔아 자동차와 관련된 비용을 내기도 했고, 여러 페달을 판매한 돈을 식비와 생활비에 보태기도 했다.
좋아서 모은 장비들이 어려운 시기에 가족을 지탱하는 돈이 된 것이다.
수수료와 배송비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리버브 판매가 항상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수수료였다.
물건을 판매하고 나면 판매 수수료와 결제 관련 비용이 빠졌다.
여기에 배송비까지 더하면 판매가격과 실제로 받는 돈의 차이가 꽤 컸다.
특히 기타처럼 부피가 큰 물건은 포장도 쉽지 않았다.
원래 박스를 대부분 버리고 본체만 미국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판매할 때마다 다시 적당한 박스를 구하고 안전하게 포장해야 했다.
헤드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고, 바디가 박스 안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채우고, 배송 중 충격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야 했다.
드럼 장비도 크기와 무게 때문에 배송비 부담이 컸다.
그래도 장비 상태가 좋았고 인기 있는 제품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주 나쁜 가격에 팔지는 않았다.
수수료가 비싼 것은 분명 흠이었지만, 미국 전역의 구매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다.
유일하게 팔리지 않은 두 대의 앰프
기타와 페달, 드럼 장비는 대부분 판매됐지만 끝내 팔리지 않은 장비도 있었다.
펜더 핫로드와 마샬 40C 앰프였다.
두 앰프 모두 한국에서 사용하던 220볼트 제품이었다.
미국은 110볼트가 기본이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변압기를 함께 포함해 좋은 조건으로 판매 글을 올려보기도 했다.
앰프 자체는 상태도 좋았고 충분히 가치가 있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미국 구매자 입장에서는 굳이 220볼트 앰프와 변압기를 함께 사용할 이유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가격을 낮추고 조건을 좋게 해도 쉽게 팔리지 않았다.
결국 펜더 핫로드와 마샬 40C는 아직도 창고에 남아 있다.
다른 장비들은 미국 곳곳으로 떠났지만, 이 두 앰프만은 아직 내 곁에 남아 있는 셈이다.
취미로 모은 장비가 생활비가 되었다
처음부터 장사를 크게 하려고 리버브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장비 중 당장 사용하지 않는 것을 정리하려는 정도였다.
하지만 미국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판매한 돈은 자연스럽게 생활비가 됐다.
좋아서 모은 장비들이었다.
각각의 장비에는 사연이 있었다.
어떤 것은 어렵게 구한 것이었고, 어떤 것은 오랫동안 사용한 것이었으며, 어떤 것은 언젠가 다시 음악을 제대로 할 때 쓰려고 남겨둔 것이었다.
하지만 장비를 바라보며 생활비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악기는 다시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가족이 당장 살아가는 문제를 미룰 수는 없었다.
그래서 팔았다.
기타를 팔고, 페달을 팔고, 드럼을 팔았다.
페달은 거의 스무 개가 넘게 팔린 것 같다.
하나씩 미련을 내려놓고 정리하다 보니 결국 대부분의 장비가 사라졌다.
한편으로는 씁쓸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악기들이 수십 년이 지나 미국에서 나와 가족의 생활을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기타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는 일이었고, 사업이었고, 꿈이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때때로 생활비가 됐다.
거의 모든 장비를 정리했지만 음악까지 놓을 수는 없었다
생활을 위해 장비를 계속 정리하다 보니 가지고 있던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여러 페달과 기타, 드럼 장비를 판매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헬릭스 장비들도 정리했다.
음악을 계속하려면 장비가 필요했지만, 예전처럼 이것저것 많이 가지고 있을 형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여러 장비를 따로 가지고 있기보다 집과 교회, 녹음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장비 하나를 제대로 마련하자고 생각했다.
집에서는 모니터 스피커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고, 교회에서는 PA에 직접 연결할 수 있어야 했다.
필요하면 실제 기타 앰프의 리턴 단자에도 연결할 수 있어야 했다.
여러 개의 드라이브와 딜레이, 리버브를 따로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앰프와 캐비넷까지 하나의 장비 안에서 구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다시 헬릭스였다.
기존 헬릭스 장비를 정리한 돈과 다른 악기들을 판매한 돈을 모아 새로운 헬릭스로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싼 장비를 산다고 하면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단순히 비싼 장난감을 하나 더 산 것이 아니었다.
가지고 있던 여러 장비를 하나로 줄이는 선택이었다.
교회 연주와 집에서의 연습, 녹음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장비 하나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다시 음악을 시작하게 해준 Helix Stadium XL
그렇게 나는 Helix Stadium XL을 구입했다.
고등학생 때 낙원상가 유리창 너머의 기타를 바라보던 시절부터 생각하면 참 먼 길을 돌아왔다.
낙원상가에서 직원으로 일했고, 친구와 함께 악기점을 운영했다.
악기점을 친구에게 양도한 뒤에는 컴퓨터와 웹디자인 전공을 살려 인터넷 사이트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많은 악기점의 사이트를 제작했고, 법인을 설립한 뒤 낙원상가 대표 사이트도 만들었다.
뮬 대표에게 광고를 내고, 뮬과 같은 악기 커뮤니티 사이트를 직접 만들어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기도 했다.
여러 사업에 도전했고 실패도 했다.
아이의 교육과 가족의 미래를 생각하며 50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에서 모아온 미국산 악기들을 다시 미국 사람들에게 팔아 생활비를 마련했다.
그 돈과 기존 헬릭스 장비를 정리한 돈을 모아 결국 내게 꼭 필요한 장비 하나를 다시 마련했다.
그것이 Helix Stadium XL이었다.
그런데 이 헬릭스를 구입하는 과정에도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기타센터에서 표시된 가격을 그대로 주고 산 것이 아니다.
여러 할인 조건을 확인하고 직원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당시 중고 제품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새 제품을 구입했다.
구입한 뒤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아직도 내가 구입한 가격보다 싸게 샀다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왜 다시 헬릭스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기타센터에서 Helix Stadium XL을 어떻게 중고보다 저렴하게 구입했는지 자세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다음 이야기
2부 — 기타센터에서 Helix Stadium XL을 중고보다 싸게 구입한 이야기